“냉기만 흐르던 대북사업에 온풍이 불어올 것”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져 혼란 시기 거쳐야”
 
대북사업에 과연 훈풍이 불어올까. 포스트 김정일 시대를 맞은 북한과의 경제협력 사업을 두고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향배를 가늠하기 어려운 혼란기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여기에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조문 방북은 김정일 사후 불확실성이 깊어졌던 대북사업에 변수로 등장했다. 막혔던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는 동시에 경색 일변도였던 남북관계 개선에 전환점이 될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단단히 얼어붙은 대북사업이 순탄하게 풀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남북경협의 키를 쥐고 있던 카운터 파트너의 수장이 사망한 데다 향후 몇 년간 김정은 후계체제 안착에 북한 지도부가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진=뉴시스
◆불확실성 높아지지만…
 
현대그룹은 1998년 11월 금강산으로 첫 관광선을 띄운 이후 현재까지 8000억원 가까이 투자했다. 그러나 대북사업은 이미 실질적인 ‘올 스톱’ 상태로 퇴보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과 천안함 사태 등의 악재로 3년 넘게 눈치만 보고 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직접 대화로 문제를 해결했지만 돌파할 애증의 대상인 그마저도 세상을 떠나 얽힌 실타래를 풀기가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악재의 연속이었던 그간의 경색된 남북관계는 대북사업의 퇴보를 초래했다. 현대아산은 관광을 중단한 금강산 지역에 상주하던 인력을 지난 8월 북한의 요구에 따라 모두 철수했고 개성공단에 18명의 인력을 남겨두고 있다.
 
현대그룹을 제외한 주요 대기업들의 대북사업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부분 시들해졌다. 삼성전자는 TV, 전화기 등의 위탁생산을 2010년 이미 중단했고, LG전자도 2009년 브라운관TV를 마지막으로 위탁사업을 모두 접었다. 대기업들은 다만 북한의 정세 변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리스크에 대응할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남북한 교역도 천안함 사태 이후 취해진 ‘5·24 대북제재’ 조치에 따라 큰 폭으로 감소했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대북 위탁가공 무역은 2009년 4억1000만 달러에서 2011년은 9월까지 400만 달러로 급감했다. 수입금지 조치에 따라 700여개에 달하던 남북경협업체는 최근 150여곳으로 줄었고 대부분 사업을 중단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123개 기업들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의 전체 교역실적 5억3500만 달러 가운데 99%인 5억3000만 달러를 담당하는 경협의 중추다. 2011년 9월 말 기준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는 4만8242명, 월 생산액은 3682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따라서 김정일 사망 이후 대북사업에 혼선이 빚어지더라도 심각한 차질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성공단이 가동을 멈출 경우 4만5000명에 가까운 북한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고 연간 3000만 달러 이상의 외화벌이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납북경협을 챙길 여력을 당분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개성공단을 통한 교역 등에 영향을 미칠 중대변수는 발생하지 않을 전망이다. 
 
경기도 파주 개성공단에서 출발한 차량들이 남북출입관리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조문 방북' 신뢰 되찾나
 
북한 정국이 안정 국면을 취하기 전까지는 현대그룹의 대북사업도 당분간 안개 속에 머물 가능성이 높지만 의외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 체제로 후계구도가 급격히 이뤄질 경우 남부경협사업 재개라는 정치적 카드를 꺼내든다면 호기를 맞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국내 정치지형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대북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에서 유연한 남북관계 기조를 끌어갈 수 있어 대북사업에 훈풍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악재의 장벽들이 겹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그룹이 사업재개에 얼마나 총력을 기울일 수 있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핵심계열사인 현대상선은 해운업황 악화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고 현정은 회장이 이끌고 있는 그룹의 경영골간도 아직 굳건하지 못하다. 이행보증금 반환 등 현대건설 인수전의 후유증이 잔존해 있고 범 현대가와의 경영권 분쟁 불씨도 아직 꺼지지 않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민간 조문 허용에 따라 이뤄진 현 회장의 ‘방북 조문’이 경색된 대북사업에 전환점을 안겨줄 것인지 주목된다.
 
3년여 중단됐던 현대의 대북사업이 일시에 재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김 위원장 면담을 통해 성과를 거뒀던 지난 8년간의 전례를 본다면 현 회장의 조문은 북한과의 해빙무드를 조성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상징적 의미가 크겠지만 조문 과정에서 현 회장과 북측은 공식협의는 못하더라도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대북사업의 방향에 대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 북한이 그동안 과거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타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을 보낸 것들을 감안하면 얼어붙은 남북경협을 신뢰감으로 차츰 녹이는 계기는 될 것으로 평가된다.
 
북측에서 경협을 주도하며 현대가와 인연이 깊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국가장의위원회 상위서열에 이름을 올려 대북사업이 재개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김정은이 경제회복과 민생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 역시 대북사업엔 호재로 여겨진다.  
 

■'정주영 소떼'가 터준 현대-北의 22년 인연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8년 6월16일 소 500마리를 몰고 방북길에 올라 남북경협의 물꼬를 텄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8년 6월16일 소 500마리를 몰고 방북길에 올라 남북경협의 물꼬를 텄다.현대가와 북한은 22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물꼬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텄다. 1989년 당시 북한노동당 서열 4위였던 허담의 초청으로 정 명예회장은 북한을 공식 방문했다. 민간인 신분 최초로 정 명예회장은 당시 김일석 주석을 면담했다.
 
이후 그는 북한을 8차례 방문했고 여생을 대북사업에 매진했다. 북한인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를 향한 그의 애향심의 발로였다. 정점은 소떼를 몰고 그가 북으로 향했던 1998년 6월의 담판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현대와 북한의 금강산 관광사업 기본합의서를 끌어냈고 그해 10월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최종 합의를 이뤘다. 합의 직후 현대아산은 11월 18일 금강산에 역사적인 첫 관광선을 띄울 수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1999년 10월 김 위원장을 1년만에 다시 만나 개성공단 개발에도 합의했다. 2001년 정 명예회장의 별세 이후엔 당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대북사업을 주도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 수사를 받는 와중에 목숨을 끊어 현대의 대북사업은 좌표를 잃고 표류했다.
 
사업을 다시 본 궤도로 올린 이는 현정은 회장이었다. 현 회장은 국내 기업인 가운데 김 위원장과 가장 깊은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평가 받는다. 김 위원장을 세 차례나 만났다. 하지만 2008년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되면서 양측의 사업교류도 소원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