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으뜸 예향(藝鄕)이요, 미항(美港)인 경남 통영. 그곳의 미륵산(彌勒山, 461m)은 500m가 채 안 되지만 그 산정에 서면 한려수도 아름다운 쪽빛 바다에 보석처럼 떠있는 수많은 섬들을 두눈에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산림청에선 미륵산을 한국의 100대 명산 중 하나로 선정했고,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선 국립공원 대표 경관 중 하나로 꼽았다. 또한 통영시는 ‘미륵산에서 바라본 한려수도’를 통영8경에서도 제1경의 자리에 올릴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나다.
◆보석 같은 한려수도 섬들 조망할 수 있는 정상
석가모니불이 약 3000년 전 이 세상에 나타나 중생을 제도했다면 미륵불은 56억7000만년 후 이 세상에 나타나 중생을 제도해줄 미래의 부처다. 미륵산은 미륵불이 사바세계에 내려와 용화수 아래에서 삼회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불교 설화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를 알려주듯 산기슭엔 용화사, 미래사, 관음암, 도솔암 등의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정상표지석과 조망
우리에게 ‘향수’란 시로 잘 알려진 정지용 시인은 6·25전쟁이 터지기 전 부산에서 배를 타고 통영을 방문해 청마 유치환 시인의 안내로 세병관, 충렬사 등 통영의 명소들을 둘러보고 미륵산에도 올랐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더욱이 한산섬을 중심으로 하여 한려수도 일대의 충무공 대소 전첩기를 이제 새삼스럽게 내가 기록해야 할만치 문헌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미륵도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이것은 만중운산 속의 천고절미한 호수라고 보여 진다.…’
정상 근처 문학비에 새겨진 정지용 시인의 기행문 ‘통영5’의 첫머리 묘사대로 미륵산 상봉에서의 조망은 평생 다시 보기 어려운 풍광을 선사한다. 북쪽으론 통영항을 둘러싸고 있는 통영시가지가 손에 잡힐 듯하고, 통영해협도 코앞처럼 선명하다. 그 너머 첩첩 산물결 이룬 내륙엔 통영의 조산인 벽방산이 우뚝 솟아 자태를 자랑한다.
서서히 동으로 고개를 돌리면 한산대첩에서 왜군을 유인했던 해협인 견내량부터 한산도·화도·방화도 등 한산대첩의 현장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호수처럼 한없이 잔잔한 저 바다에서 420년 전 펼쳐진 전투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벅차오른다. 정신 차리면 팔손이나무 자생지 비진도 너머로 우리나라 섬들 중 가장 아름답다는 소매물도가 아련하다. 망망대해로 이어진 남쪽으로는 연대도 너머로 연화열도와 욕지도가 한려수도 징검다리를 이뤘고, 추도와 두미도도 선명하다. 서쪽 조망도 좋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함선 21척을 격파시킨 당포해전의 현장 너머로 떠있는 사량도 뒤쪽엔 남해도가 굳건하게 거센 파도를 막아준다. 모두 한려수도를 빛내는 보석들이다.
미륵산 일출
미륵산은 산책하듯 오를 수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대표적인 코스는 용화사 코스와 미래사 코스다. 정상까지 용화사에서는 1시간~1시간30분, 미래사에서는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산길도 평탄해 노약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시내버스 종점인 용화사 광장에서 접근하고, 승용차를 가져갔다면 미래사 코스를 선택하면 좋다. 1월1일 통영 지역은 아침 7시34분에 해가 뜬다.
미륵산케이블카는 시간이 부족한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하부정류장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정상 바로 아래의 상부정류장에 닿는다. 매년 1월1일은 오전 6시부터 운행한다. 예약은 받지 않고, 매표는 당일 오전 4시부터 시작한다. 그렇지만 매표 번호가 늦은 관광객은 미륵산 일출을 못 볼 수도 있다. 이렇게 기다리다 일출을 놓칠 바엔 정상까지 발품을 파는 게 낫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해도 왕복으로 하지 말고 편도로 끊고 하산은 걸어서 하는 방법도 있다. 왕복 9000원, 편도 5500원.
용화사, 미래사 스님과 신도들, 또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수년 간 공사를 못하고 미뤄오다가 2008년에 완공한 이 미륵산케이블카는 편하긴 하지만 미륵산의 풍치를 많이 망가뜨려놓았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인 상부 정류장은 미륵산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모습이다.
시락국
◆늘 푸른 편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미래사
미륵산 남쪽 기슭의 미래사(彌來寺)는 편백나무로 둘러싸인 절집이다. 부도전 왼쪽으로 나있는 300m 정도의 편백나무 오솔길은 짙은 녹색에 안겨 있는 꿈같은 길이다. 그 길 끝에 아담한 미륵불이 있다. 왕복 10~20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짧은 산책길이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다.
미래사는 한국 현대불교 선종의 거봉인 효봉선사가 6·25전쟁 때 피난 와 창건한 절집이다. 우리나라 최초 판사였던 효봉은 직책상 내린 사형선고로 괴로워하다 판사복을 벗고 출가한 선승이다. ‘무소유’로 잘 알려진 법정이 효봉선사를 은사로 출가했고, 일초(고은 시인)도 한때 여기서 수행했다.
박경리 선생 묘소도 가깝다. 젊었을 때 고향을 떠난 이후 48년만인 말년에 고향 통영을 찾은 선생은 미륵산 아래 양지농원에 묵으며 책을 읽고 지내다가 먼 바다를 내려다보곤, 죽으면 이곳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선생이 세상을 떠나시자 이 말은 유언이 됐고, 양지농원 주인은 선생의 유택을 위해 선뜻 1000평의 땅을 내놓았다. 박경리 선생의 평소 유언대로 묘지는 작고, 비석 하나 세우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다. 묘소에서 내려다보는 먼발치의 바다 풍경이 참 포근하다.
미래사
묘소 입구에 위치한 박경리기념관에선 선생의 문학과 일생을 살펴볼 수 있다. 문화해설사가 선생의 작품, 그리고 선생과 통영의 인연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한다. 친환경공법으로 작가의 기본 철학을 잘 살려 지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경리기념관은 2011 경상남도 건축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기념관은 신정 등 명절엔 쉬지만 선생 묘소 참배는 언제든 가능하다. 무료.
여행수첩
●교통 경부고속도로→비룡분기점→중부고속도로(구 대전·통영고속도로)→통영 나들목→통영시청→충무교→미륵도→도남로→용화사→미래사 <수도권 기준 5시간 소요>
●숙박 통영 도남관광지에 BAY콘도호텔(055-649-4880), 금호충무마리나리조트(055-643-8000)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미래사 진입로 주변엔 초록빛바다펜션(010-4566-8833), 갈매기리조트(641-8028), 통영미륵펜션(010-3579-0781) 등 펜션이 많다.
●별미 새벽부터 문을 여는 서호시장(새터시장)엔 이른 새벽에도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그 중에서 이른 새벽에 가장 수월하게 맛볼 수 있는 메뉴는 ‘시락국’. 장어를 푹 고아 우려낸 육수에 된장을 풀고 끓여낸 시래기국이다. 서호시장 농협 바로 앞에 위치한 원조시락국(646-5973)은 반찬이 뷔페식으로 갖춰져 있다. 1인분 5000원.
통영 별미인 복요리는 서호시장 입구의 다복식당(055-645-8202), 수정식당(055-644-0396), 분소식당(055-644-0495) 등이 잘한다. 졸복국 1인분 1만원. 요즘은 굴이 제철이다. 통영항 동쪽의 남망산 입구 쪽에 있는 대풍관(055-644-4446)이 잘 알려져 있다. 굴회, 굴전, 굴밥 등이 나오는 굴 코스 요리가 1인분에 1만3000~2만원(2인 이상 주문 가능).
●참조 통영시청 관광과 055-650-4614, 통영시 관광안내소 055-650-46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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