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을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에서 불혹(不惑)이라 했고 쉰살을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입시, 취업, 결혼 등의 과업을 이겨낸 지금 중년의 삶이 과연 그럴까. 2016년 통계로는 40~60세 중년의 자살률은 10만명당 30명 정도로 10~20대보다 높았다. 중년은 어느 세대보다 불안을 달고 살고 있다. <미움받을 용기>로 150만 독자의 심리를 진단한 기시미 이치로는 이 문제의 원인을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고 보고 이들의 마음에 용기를 주기 위해 <마흔에게>를 써내려갔다.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과업을 찾아 시작해야 한다. 기시미 이치로는 60세에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3년 만에 한국 신문에 한국어로 쓴 서평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그에게 배우는 일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유사 체험’이다. “중년이 되면 평판에 개의치 않고 순수하게 배우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이것이 세계적인 철학자가 생각하는 ‘나이 듦’의 특권이다.
그렇다면 여러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시미 이치로는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말을 인용한다.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즉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많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시미 이치로는 상담할 때 상대가 ‘그렇지만’을 몇번 말했는지 꼭 일깨워준다. 그 벽을 넘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시미 이치로의 어머니는 쉰살이 되기도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독일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도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는 기력과 의욕을 잃지 않는 모습'은 기시미 이치로에게 큰 감명을 줬다. “춤출 때는 순간순간이 즐겁다. 어딘가 도달하기 위해 춤추는 게 아니듯 인생 또한 끝을 향해 달리는 경주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 땅을 살아가는 중년의 삶은 고달프다. 자녀를 대할 때도, 늙어가는 부모를 대할 때도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족의 행복을 바란다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부터 챙기고 적당한 거리를 둬야 관계에서 오는 불안이 사라지고 가족에게도 행복을 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기시미 이치로는 쉰 살 때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겼다. 딸과 아들, 그리고 아버지가 생각났다. 큰 수술을 끝내고 회복했을 때 그는 생각했다. “인생은 누구나 알지 못합니다. 이 사실은 바꿀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식뿐입니다.” <마흔에게>는 당신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다시 살아갈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기시미 이치로 지음 |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 펴냄 | 1만4000원
☞ 본 기사는 <머니S> 제564호(2018년 10월31일~11월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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