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은옥 기자
#. 8년차 직장인 A씨는 지난 6월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를 7억원에 매입했다. 그동안 모아둔 2억2000만원에 주택담보대출(주담대)로 2억8000만원을 빌렸다. 여기서 모자른 2억원은 자신과 배우자의 부모님에게 ‘차용증’을 쓰고 각각 1억원씩 빌려 집값을 마련했다. 이후 A씨는 적금 만기로 2000만원을 손에 쥐었지만 이를 대출 상환에 쓰지 않고 전액을 주식과 암호화폐에 투자했다. A씨는 “월급으로는 대출을 빨리 갚을 수 없을 것 같아 자산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려고 한다”며 “주변에선 이미 집을 사고 비트코인 등으로 돈을 버는데 가만히 앉아서 투자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올 들어서도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열풍이 이어지면서 가계빚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월급을 모아 대출을 끼고 내집마련을 할수 있었던 기성세대와 달리 집값 급등과 대출규제 강화로 자산증식이 어려워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 늘면서 이들은 빚을 내면서까지 투자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1800조 돌파한 가계빚
올 2분기말 가계빚은 1805조9000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800조원을 돌파했다. 최근 1년동안 가계빚 증가폭은 약 170조원으로 2003년 관련 통계 편제 이후 최대 증가폭을 나타냈다.
가계빚이 불어나는 속도는 가팔라지고 있다. 지난해 1분기까지만 해도 가계빚의 전년동기대비 증가율은 4.5%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4분기에는 8.0%로 상승한 뒤 올 1, 2분기에는 각각 9.5%, 10.3%에 달했다. 2017년 2분기 이후 최대 증가율이다.

가계빚 가운데 가계대출 잔액은 전분기말대비 38조6000억원(2.3%), 전년동기말대비 159조2000억원(10.3%) 급증한 1705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결제 전 신용카드 사용액을 이르는 판매신용 잔액은 100조6000억원으로 전분기말보다 2조7000억원(2.7%), 전년동기말대비 9조4000억원(10.3%) 늘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할 점은 올 하반기 들어서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전월대비 15조2000억원 늘었는데 이는 전월(10조3000억원)대비 증가폭이 4조9000억원 확대됐다. 주택매매와 집단대출,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7조5000억원 증가했고 카카오뱅크와 SD디바이오센서 등 공모주 청약과 관련된 자금수요 영향으로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이 7조7000억원 늘었다.

이에 따라 올 1~7월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78조8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기간 가계대출 증가액인 45조9000억원보다 71.6%(32조9000억원) 급증한 수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이었던 2019년 1∼7월 증가액인 23조7000억원에 비하면 232.5%(55조1000억원) 폭증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규제 빈틈 파고드는 대출수요
문제는 금융당국이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에 나섰지만 약발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시중은행에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 상한을 5~6%로 정하고 지난 7월부터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강화하는 등 극약처방을 내렸지만 사실상 효과가 없었다.
앞서 DSR 규제는 금융기관별 평균 40%를 맞추면 됐지만 지난 7월7일부터는 차주별 40%로 강화됐다. 하지만 이는 1금융권에만 해당되고 보험사와 카드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는 DSR 60%가 적용된다. 이에 2금융권을 중심으로 대출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실제로 지난 7월 2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5조6000억원으로 전월 증가폭(3조9000억원)보다 확대됐다. 이에 따라 올 1~7월 2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27조4000억원에 달했다. 앞서 2금융권 가계대출의 경우 2019년 1~7월 3조5000억원 감소한 데 이어 2020년 1~7월에는 2조4000억원 줄어든 점과 비교하면 올해는 2금융권의 가계대출이 대폭 불어나 전체 가계대출의 증가세를 이끌었다.


차주별 DSR 40%를 적용받는 1금융권에서도 대출수요는 규제 빈틈을 파고들었다. 금융당국은 6억원을 초과하는 주택담보대출을 받거나 연소득과 상관없이 1억원 이상의 신용대출을 받는 경우에만 DSR 40%를 적용하고 있다. 1억원 미만의 신용대출에 대한 DSR 규제는 2023년 7월부터 적용된다.

이에 현재로선 대출을 1억원 미만으로 받으면 DSR 40% 규제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빚투·영끌 수요는 지속됐다. 그 결과 신용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권의 기타대출 증가액은 지난 6월 1조3000억원에서 7월 3조6000억원으로 늘었다. 은행권 주담대 역시 7월 6조1000억원 증가하면서 전월 증가폭(5조100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가계채무불이행·다중채무비중 확대
가계부채는 날로 급증하는 데다 금융당국의 은행 대출규제 강화로 2금융권으로 대출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면서 대출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이 한국신용정보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은행·보험·증권·카드사 등 금융회사에 등록된 가계(개인) 채무불이행 금액은 올 6월말 기준 91조2950억원으로 지난해말(87조5867억원) 대비 4.2%(3조7083억원) 늘었다.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도 늘고 있다. 윤창현 의원에 따르면 올 1분기 저축은행 전체 대출에서 다중채무자의 대출 잔액 비중은 73.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금융권의 대출 중 다중채무자 잔액 비중이 31.8%인것과 비교하면 두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한은이 8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취약차주의 이자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취약차주는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자를 말한다. 한은은 기준금리가 오르면 취약차주의 연체율이 2%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로 금리 상승기인 2016년 4분기~2019년 1분기 취약차주 연체율이 6.4%에서 8.4%로 2%포인트 상승했다.

최근 취임한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부실 확대와 자산 가격조정 등 다양한 리스크가 일시에 몰려오는 ‘퍼펙트 스톰’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으려면 위험하지 않은 실수요를 제외한 대출총량규제가 필요하고 여기에 금리 인상도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