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마산 합포구에서 만난 70대 만물상 주인 이모씨는 '마창진(마산·창원·진해) 행정통합'에 대해 묻자 대뜸 언성을 높였다. "거리에 사람 한맹(명) 보입니까? 통합을 뭣 할라꼬 한답니까"
마산·창원·진해 3개 시를 하나로 묶은 통합창원특례시(이하 창원시)가 출범한 건 2010년 7월. 옛 마산은 창원시 산하의 5개 행정구 중 마산 합포구와 마산 회원구로 남았다. 이 통합으로 현재 창원시는 인구 99만명, 한해 예산 4조원에 서울(605㎢)보다 넓은 면적(749㎢)을 가진 거대 도시가 됐다. 당시 정치권이 장밋빛으로 그려냈던 통합의 미래는 '규모의 경제'와 '균형 발전'. 16년이 흐른 지금, 이 약속은 현실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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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마산 상권━
마산 롯데백화점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70세 조씨는 마창진 통합 이후 마산의 쇠락이 본격화됐다고 했다. 조씨는 "한창 때는 여(여기)가 시장 상인만 천맹이고, 오가는 사람이 천오백맹은 거뜬히 넘었던 뎁니더. 지금은 창원 쪽으로 사람이 싹 다 빠지삐리는데 별 수 있겠심니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의 상점 지척에는 경남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마산어시장이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손님들의 발걸음에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정신없이 뒤엉키던 거리였다. 그러나 토요일인 지난 21일, 이 거리는 스산할 정도로 적막했다. 근방 상권의 심장 역할을 하던 마산 롯데백화점마저 1년8개월 전 매출 감소로 폐점하면서 인적은 더욱 줄었다. 천태문 마산어시장 상인회장은 "백화점이 문을 닫은 뒤로 인근 상인들 매출이 예전의 30%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고 토로했다.
통합 당시 창원시는 상생을 약속했지만, 현실은 마산 원도심 공동화였다. 시는 활력을 잃은 도심을 살리기 위해 일부 부서와 산하기관 이전 카드를 만지작거렸지만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내 논란이 일 것을 우려해 이를 백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이 정치의 셈법에 갇혀 손을 놓은 사이, 상인들은 유동 인구 급감의 직격탄을 맞았다. 조씨는 "세군데가 하나로 합쳤다 아임니까. 근데 마산이나 진해는 소외돼가꼬 싹 다 죽어삐릿심더"라며 씁쓸함을 삼켰다.
손님 없는 가게에 처연한 마음이 들어 불 꺼진 냉장고에서 음료수라도 하나 꺼내 사려고 하자, 조씨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팔려야 말이지예. 유통기한이 다 지나버렸심더"
그러나 죽어가는 도시에 색을 칠한다고 상권이 살아나지는 않았다. 창동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상인 이씨는 "관광객들은 한두번 오고 찾질 않는데 빈 거리에 분칠만 해봤자 무슨 소용이냐"며 "원래 살던 주민들이 떠나지 않도록 대중교통 늘리고, 공원 만들고 마산을 잘 살게 하는 게 먼저 아니냐"고 반문했다.
마산 주민들은 통합이 도리어 지역의 몰락을 재촉했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행정 권한의 상실'이 꼽힌다. 통합 이후 마산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마산시청은 창원시 산하의 구청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자치구가 아닌 일반 행정구로 전환되면서 독자적인 예산 편성권을 잃었고, 지역 현안을 책임질 선출직 시장도 사라졌다. 권한을 잃은 도시는 무력했다. 산적한 마산의 현안들은 창원 중심의 행정체계에서 길을 잃었다.
행정의 중심이 창원으로 일원화되자 도시 인프라도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 마산시의회와 마산교육청, 마산상공회의소 등 핵심 관공서가 모두 옛 창원 지역으로 통폐합되면서 금융기관과 시민단체 등도 거점을 옮겨갔다. 창원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3년 사이 마산권의 은행 점포 수는 54곳에서 41곳으로, 증권사 수는 12곳에서 단 3곳으로 크게 줄었다.
김호근 마산살리기범시민연합 총장은 "통합 논의 당시 지역 정치권 내부에서는 '통합시의 명칭은 창원으로 하되, 시청사는 마산에 두고, 진해에는 획기적인 재정 지원을 보장한다'는 합의가 있었다"며 "하지만 막상 통합이 성사되자 창원시의회는 이 합의를 뒤집었고 결과적으로 통합시 명칭도, 통합 시청사도 모두 창원이 독식하게 되면서 마산은 쇠락의 도시가 됐다"고 했다.
마창진 통합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며 속도를 냈다. 2009년 12월24일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주도하던 경남도의회는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 출입을 통제한 채 마창진 통합안을 논의했다. 주민투표 요구도 묵살됐다. 결국 시의회 표결만으로 통합 찬성 결정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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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공론화 과정 거쳐야"━
광주·전남, 대전·충남, 대구·경북 등 광역 단위의 3대 행정통합은 물론 전주·완주 같은 기초 단위의 통합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3대 행정통합 특별법은 지난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4일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7월, 세곳의 통합특별시가 일제히 깃발을 올린다.
일각에선 자칫 마창진 통합과 같은 실패 사례가 반복될까 우려한다. 이번에도 주민투표는 생략됐다. 찬반 논란에 시간을 뺏기거나 사업이 무산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속도전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방자치 강화를 내세우면서도 행정통합을 국회 입법으로 서둘러 추진하는 것은 자치 취지와 배치될 수 있는 만큼, 최소한 대상 지역 주민투표나 해당 지방의회의 찬성 결의 등 직접·간접적 동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고 지적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도시 규모가 커질수록 세력은 거점 중심으로 쏠리고 주변 도시는 몰락하는 공동화 현상이다. 거대 거점 도시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주변 중소도시의 인구와 자원을 흡수한다. 주변 지역이 쇠퇴하면 결국 중심 도시의 성장 동력도 깎이게 마련이다. 국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전국 7개 혁신도시로 순유입된 인구(약 11만6000명) 중 72.6%가 같은 권역 내 원도심이나 인접 시·군에서 빠져나온 인구였다. 반면 수도권에서 유입된 인구는 19.5%에 불과했다.
따라서 행정통합시 교통체계 개편은 물론 읍·면·동·마을 단위에 맞는 의료·교육 인프라 확충, 지역 특화산업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행정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지역민들의 자기결정권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기초 단위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주민 소환 및 주민투표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등 민주적 견제 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유력 통합시장 후보들 역시 청사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특정 지역을 주 청사로 언급하는 순간, 반대 지역의 거센 반발과 표 이탈에 직면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유상엽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통합 청사 소재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단순한 행정적 관점을 넘어 고도의 정치적 역학 관계가 반영되는 사안"이라며 "추후 지역 사회 전반에 걸쳐 막대한 정치·경제·사회적 파급 효과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만큼, 투명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주민들의 요구를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마창진의 기초단위 통합도 기대와 달리 긍정적 평가가 많지 않았던 만큼 광역단위 통합은 유사하거나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시너지에 대한 확신이 낮고 추진하더라도 부작용 대응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원금 유인이나 정치적 효과를 앞세우기보다 과거 통합 사례를 면밀히 검토한 뒤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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