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대법관 26명 증원'(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사법 지형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사진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된 마지막 사법개혁법인 '대법관 증원 법안'(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대법관이 현재 14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난다. 법안 공포 2년 뒤 4명, 3년 뒤 4명, 4년 뒤 4명을 순차적으로 임명해 4년 내 12명의 대법관을 추가한다.
하루 10건꼴로 판결을 내려야 하는 대법관들의 과부하를 덜어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이재명 정부 내에서 대법관의 절대다수를 임명하게 돼 자칫 사법부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고심 적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대법관 증원 뿐 아니라 미국, 독일 등처럼 중대한 사건만 대법원이 심리하도록 '상고심사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이 근본적 해법이란 지적이다.


사법개혁 3법 중 하나인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오는 2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사진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월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2026년 대법원 시무식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이번 증원안의 표면적인 명분은 대법원의 상고심 과부하 해소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민사 상고심 접수 건수는 1만4958건에 달했다. 동일인에 의한 반복적 과다 소송을 제외하더라도 실질적인 사건 수는 1만3026건으로, 전년 대비 7.2% 증가했다. 형사 사건의 경우 전년 대비 18.0% 급증한 2만4889건이 접수돼 대법원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현재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재판 업무를 담당하는 대법관은 12명이다. 연간 약 4만건에 육박하는 상고 사건을 대입하면 단순 계산 시 대법관 1인당 연간 약 3300건의 주심 사건을 맡고 있는 셈이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기준으로 환산하면 대법관 한명이 하루에 최소 10건 이상의 최종심 판결문을 검토하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살인적인 업무량이다.

2023년 대법원이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민사 본안 상고심의 약 70%, 행정 및 특허 사건의 72% 이상이 본안 심리 한번 받지 못한 채 심리불속행으로 종결됐다. 사진은 법원장 등 법관들이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이러한 업무 과부하로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관들이 방대한 사건 기록을 제대로 읽어볼 시간조차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2023년 대법원이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민사 본안 상고심의 약 70%, 행정 및 특허 사건의 72% 이상이 본안 심리 한번 받지 못한 채 심리불속행으로 종결됐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상고 이유에 헌법 위반이나 대법원 판례 변경 등 중대한 법리적 쟁점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대법원이 별도의 본안 심리 없이 곧바로 기각하는 절차를 말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대법관 증원은 법조계 내에서도 비교적 이견이 적은 사안이었다. 한 일선 부장판사는 "현재의 구조는 대법관들이 기록을 제대로 검토하기조차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대법관 인력 확충 자체는 사건의 충실한 심리와 상고심 적체 해소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했다. 이어 "다양한 전문 분야와 사회적 배경을 반영한 합의를 가능하게 해, 복잡해진 분쟁 유형에 대한 판단의 폭과 설득력을 넓힌다는 점에서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관 증원이 자칫 사법부의 독립성을 흔들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진은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을 비롯한 법원장들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관 증원이 자칫 사법부의 독립성을 흔들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이재명 대통령은 남은 임기 내에 전체 26명의 대법관 중 22명을 임명할 권한을 쥐게 된다. 법안 공포 후 3단계에 걸쳐 증원되는 12명의 대법관과 현 정권 재임 기간 중 임기가 만료되는 대법관 10명의 후임자를 포함한 수치다. 대법관의 약 85%를 현 정권 내 임명하게 되면 재판의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관 증원이 권력의 입맛에 맞게 사법부를 장악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대표적인 사례가 헝가리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정권은 2011년 헌법재판관 수를 11명에서 15명으로 늘려 친정부 인사를 대거 투입함으로써 위헌적이고 독단적인 정책에 제동을 걸던 최고위 법원의 견제 기능을 무력화시켰다. 사법부가 정권의 거수기로 전락하자 언론 통제 등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법안들이 일사천리로 통과됐고, 그 대가로 헝가리는 유럽연합(EU)으로부터 '법치주의 훼손' 판정을 받아 수십조원 규모의 결속 기금 지원을 동결당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는 이번 대법관 증원안에 대해 "매년 4명씩 3년 동안 12명을 늘리는 것을 순차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한 정권에서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원을 뽑는 무리수"라고 했다. 장 교수는 "진정한 순차적 증원이라면 현 정부와 차기, 차차기 정부에 걸쳐 매년 1명씩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방식이 타당하다"며 "현 정부 임기 내에 12명을 모두 임명하겠다는 것은 대법원의 정치적 편향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법관 증원과 함께 근본적으로는 대법원 상고제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사진은 현의선 수원지방법원·가정법원 안양지원장의 사회로 지난해 12월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 : 방향과 과제 제5세션 '상고제도 개편 방안'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근본적으로는 대법원 상고제도 개편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사실 한국에서 대법원 상고제도 개편 논의는 과거부터 꾸준히 지속돼 왔다. '신속하면서도 충실한 재판'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와 2010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거쳐 2014년 상고법원 설치 추진, 2019년 사법행정자문회의 산하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 구성에 이르기까지 수십년에 걸쳐 제도 개편을 위한 시도가 이어져 왔다. 하지만 사건 선별에 따른 권리 제한과 권한 재배분을 둘러싼 이해충돌 우려가 겹치며 합의에 이르지 못해 상고제도는 1994년 심리불속행 제도 도입 이후 변화가 없었다.
사법 선진국들은 대법원이 모든 상고 사건을 심리하는 대신, 법률적·헌법적 가치가 큰 사건만을 체계적으로 선별해 집중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래픽은 민국 연방대법원의 상고심 접수 및 허가 건수. /그래픽=강지호 기자(시대)
사법 선진국들은 대법원이 모든 상고 사건을 심리하는 대신, 법률적·헌법적 가치가 큰 사건만을 체계적으로 선별해 집중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룰 오브 포'(Rule of Four)다. 미 연방대법원은 매년 약 4000~8000건의 상고 사건을 접수하지만 9명의 대법관 중 4명 이상이 동의하는 사건에 대해서만 이송명령을 내린다. 이 과정을 통과해 실제 본안 심사가 이뤄지는 사건은 연간 1% 내외에 불과하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법원이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판결에 역량을 쏟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독일은 2단계의 엄격한 상고심사제를 운용한다. 원심법원이 상고를 허가하지 않을 경우 대법원에 '상고수리'를 별도로 신청해야 하며 법률적 원칙의 중요성이 인정될 때만 심리 대상에 오른다. 일본 역시 1990년대 사법개혁을 통해 '상고수리신청' 제도를 도입했다. 판례 위반이나 헌법 해석의 중대성이 없는 경우 대법원이 재량으로 상고를 거부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