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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소통 문화를 깨다… 한국형 점도표의 탄생━
이 총재 취임 초반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한국은행 특유의 폐쇄적 소통 관행을 정면으로 바꾼 데 있다. 모호한 수사로 시장의 눈치 게임을 유도하던 기존 한은의 소통 방식은 그의 취임과 함께 사라졌다.대표적 변화는 한국형 점도표(Forward Guidance·선제적 금리 경로 안내) 방식의 도입이다. 2022년 11월부터 기자회견에서 금융통화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구두로 공개하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공식 'K-점도표' 제도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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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 없는 발언, 그러나 거센 반발━
이 총재는 금리를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차례로 공론화했다. 임기 중 가장 논쟁적인 국면이었다.2024년 8월, 한은은 수도권 집값 폭등과 저출산의 근원에 왜곡된 입시 경쟁이 있다는 거시경제학적 진단 아래 상위권 대학의 '지역 비례 선발제' 도입을 공식 제안했다. 그러나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3개 대학 모두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기상조" 등을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밝혔고, 법학계 일부에서는 위헌 소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외국인 돌봄 노동자 최저임금 차등 적용' 논의를 공론화했을 때도 양대노총과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차별적·반인권적 발상"이라며 보고서 폐기와 총재 사과를 공개 요구했다.
거시경제학적 문제 진단의 방향성 자체에 일부 공감이 형성됐으나, 핵심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은 거셌다.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뒤로하고 정치·사회적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함께 쏟아졌다. '미스터 오지랖'이라는 별명이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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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가계부채… 위기 앞에서 드러난 역할━
위기 앞에서의 대응은 뚜렷했다. 2024년 12월 3일,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로 금융시장이 동요하자, 최상목 부총리가 소집한 F4(기획재정부 장관·한국은행 총재·금융위원장·금감원장) 긴급회의에 즉각 참여해 "시장이 완전히 정상화될 때까지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한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함께 발신했다. 또한 계엄 당일 밤 F4 회의에서 최상목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하려 하자, 이 총재가 이를 만류해 경제팀의 공백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12월 29일에는 최상목 권한대행이 무안 제주항공 참사 대응에 집중하느라 불참하자, 이 총재가 이례적으로 F4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이는 이 총재 주재로 F4 회의가 열린 첫 사례로, 부총리 부재 시 한국은행 총재가 회의를 이끌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
"말은 창대했으나 칼자루가 없었다"… 권한의 한계━
이 총재의 광폭 행보 이면에는 실행 수단의 부재라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교육 개혁, 노동 이민 정책 등 그가 공론화한 의제들은 모두 입법과 예산을 쥔 정부와 국회가 풀어야 할 과제였다. 한국은행에는 이를 직접 실행할 권한이 없었다. 제도적 뒷받침 없이 반복되는 제언은 점차 실효성 없는 발언으로 소비됐다.통화정책 본연의 영역에서도 독립성 논란은 불거졌다. 2024년 하반기 기준금리 두 차례 인하 과정에서, 시장 일부에서는 기재부의 내수 부양 요구와 국토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계대출 급증)가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 정작 금리 결정이 정치 변수에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구조개혁을 공개적으로 주창한 것과 실제 금리 결정 사이의 간극이 그 비판의 핵심이다.
이창용 총재의 임기는 중앙은행이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드러낸 4년이기도 했다. 한은법상 한국은행의 목적은 '물가 안정'이다. 그 틀 안에서 총재 개인이 공론화할 수 있는 의제의 범위는 넓어졌다. 그러나 실행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변하지 않았다.
다음 총재가 이 총재의 광폭 행보를 계승할지, 통화정책 본연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선회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그 선택은 '중앙은행의 역할이 어디까지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답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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