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송환은 정상외교와 범정부 공조가 빚어낸 결실이다. 흉악범을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는 것은 사법 정의의 실현이자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박왕열이 해외 교도소를 거점으로 마약을 유통시킨 점을 고려하면, 범죄 연결고리를 끊어냈다는 의미도 크다. 다만 양국 정상의 '톱 다운' 결단이 있기까지 오랜 시간 송환이 지연된 건 아쉬운 대목이다.
문제는 한국 수사망을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범죄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출국해 돌아오지 않는 해외도피 사범은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1000명을 넘었다. 올해 1~2월에도 233명이 해외로 달아났다. 지난해 말 기준 해외에 수감돼 있는 한국인도 52개국 1163명에 달한다. 이 중 마약사범 비중이 23%로 가장 높다. 해외 범죄자 송환 실적이 늘고 있지만 빠져 나가는 사람이 더 많고, 사후 추격만으론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최근 범죄는 국경을 넘는 초국가적 네트워크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과거엔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뒤 해외로 밀항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해외에 범죄 조직을 만드는 기업형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사회적 논란이 컸던 캄보디아 대학생 고문·살해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해외에 조직 거점을 두고 국내를 대상으로 범죄를 실행하는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번에 송환된 박왕열도 몸은 교도소에 있으면서 휴대폰을 이용해 원격으로 범죄를 주도했다.
범죄가 디지털 기술을 타고 비대면화되면서 기존 영토 중심 수사체계는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수사 패러다임을 '선제적 차단'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그 때문이다. 국제공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가 됐다. 특히 단순한 정보 교환을 넘어 범죄자금 흐름을 실시간 공유하고 공동 수사를 상시화하는 체계로 끌어 올릴 필요가 있다. 동남아 범죄 사례 상당수가 취업 사기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를 막을 경고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책임 역시 중요하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디지털 범죄 대응 역량을 높이는 일이다. 국경이 아닌 기술 위에서 작동하는 범죄를 잡으려면 수사기법 역시 기술을 앞서가야 한다. '마약왕 송환'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범죄자 송환을 위한 외교적 노력은 지속하되, 글로벌 범죄가 자라나는 토양 자체를 걷어내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뒤쫓는 대응에 머무른다면 같은 유형의 범죄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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