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리스크에 삼성그룹이 중장기적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단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노사 갈등을 여러 제도들을 통해 사전에 예방해 온 해외 기업들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단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은 경기 평택시 고덕동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삼성그룹이 노동조합의 파업 리스크로 바이오·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의 중장기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익공유와 정례 소통, 외부 조정 절차 등을 통해 안정적인 노사 관계를 구축해 온 해외 기업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선 독일 머크그룹 생명과학 계열사 머크밀리포어의 노사 갈등 해결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25년 머크밀리포어의 아일랜드 코크 주 블라니·캐릭투힐 사업장 노조는 파업을 진행했다. 회사가 일부 기술직 근로자의 임금을 최대 20% 삭감하고 근로조건을 일방적으로 바꾸려 한단 이유에서다.

회사는 노조와 직접 소통 방식만으론 갈등을 풀기 어렵다고 판단해 노조 측 제안인 제3의 외부 조정자가 참여하는 협의 구조를 수용했다. 노사가 신뢰할 수 있는 외부 조정자를 협상에 끌어들이면서 협상의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결국 추가 파업은 중단됐다.


영국 제약 기업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투트랙 보상 설계도 좋은 사례로 평가받는다. 2022년 GSK 노조는 사측의 연봉 인상안이 물가 상승률에 미치지 못한다며 파업을 진행했다. 당시 영국은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이 9%까지 치솟으며 생계비 부담이 커진 상황이었다.

GSK는 추가 협상을 통해 기본급 인상률을 기존 4.0%에서 4.5%로 높이고 전 직원에게 1주 치 급여에 해당하는 일회성 특별 보상을 곧바로 지급하는 '투트랙 보상책'을 제안했다. 기간이 오래 소요되는 연봉 협상 전 일회성 보조금을 즉시 지급하며 적극적인 소통 의지를 드러냈고 연봉 인상률에서도 노조와 합의를 끌어내며 생산 차질을 막았다.

해외 주요 반도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사후 갈등 봉합이 아닌 사전에 노사 갈등을 예방해 왔다. 사진은 TSMC 본사 로고. /사진=머니투데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사례에서도 노사 상생 모델을 찾을 수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는 매년 성과급 지급을 노사 간 협상이 아닌 정관과 이사회를 통해 결정하는 근로자 보상 체계에 따른다. 회사 실적과 연동해 이익의 일정 비율 이상을 직원에게 배분하되 설비투자와 기술개발 재원도 함께 고려해 성과급 규모를 정한다. 성과를 직원과 나누면서도 미래 투자 여력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해당 제도가 안착할 수 있었던 배경엔 국가 전략산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근로자들의 인식이 자리한다. 정부 연구기관에서 출발한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 성과가 대만의 경제와 반도체 산업 위상과 직결되는 만큼 구성원들도 단순 고용 관계를 넘어 국가적 사명을 공유한다는 인식을 갖추게 됐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 핵심 산업이란 인식을 지속해서 심어준 정부의 역할도 컸다.


세분화된 내부 소통 채널도 원활한 노사 관계의 핵심 역할을 했다. 기존 사업장별 노사회의에 더해 기능·부문별 실리콘가든 미팅을 만들고 직원대표가 분기별 회의와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실명 또는 익명으로 의견을 전달토록 했다. 보상 불만이나 조직 내 갈등이 쌓여 파업 요구로 번지기 전 현장 의견을 경청할 소통 창구를 만들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소통 문화도 참고할 만하다. 인텔은 '건설적 대립' 문화를 통해 직급이나 개인감정보다 사실과 데이터를 앞세워 문제를 논의한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도 임직원들이 직급과 관계없이 관리자들에게 의견을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고 문제 제기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갈등을 키우다 사후 봉합하는 방식이 아닌 사전 소통 채널을 적극 운영해 리스크를 낮추는 구조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 노사 갈등의 가장 큰 문제는 대화가 없다는 것"이라며 "노조 요구가 과도하다는 여론도 있지만 노조가 문제 삼는 성과급 산정 방식과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사측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규모 설비투자와 기술 투자가 불가피한 만큼 사측은 투자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노조도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해야 한다"며 "교착 상태가 길어지면 민간 전문가나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를 통해 양측 입장을 조율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