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베센트 장관을 만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미국 측의 즉답은 받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을 때도 베센트 장관을 만나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다.
통화스와프는 외환위기나 금융시장 불안 등 비상 상황에서 자국 통화를 담보로 상대국 통화를 사전 약정한 환율에 따라 빌릴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한국은 2008년 금융위기(300억 달러),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600억 달러) 당시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이 600억 달러 통화스와프는 2021년말 종료됐다.
이 대통령이 통화스와프를 요청한 배경에는 다음달 18일 출범 예정인 한미 전략투자공사가 있다. 대미 투자 확대 과정에서 대규모 달러화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외화 조달 안전판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최근 중동 지역 긴장 고조와 원화 약세가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은 1500원 안팎으로 올랐다.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미 투자로 대규모 달러가 유출되면 외환 수급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원화 약세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이 아닌 외화자금시장에서 작동하지만, 시장에 충분한 달러 유동성이 공급될 수 있다는 신호를 줘 원/달러 환율이 결정되는 외환시장에서 심리적 안정 효과를 낼 수 있다.
다만 미국이 한국의 요청을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은 현재 유럽중앙은행(ECB)·일본·영국·캐나다·스위스 등 5개 주요국 중앙은행과 상설 통화스와프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모두 기축통화국이거나 글로벌 외환시장 영향력이 큰 국가들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예외적으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 다른 우방국들의 추가 요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특히 미 정부는 한국의 외화보유액이 충분하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월말 기준 4278억8000만달러(약 640조원)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앞두고 외환 안전판 확보 차원에서 이 대통령이 통화스와프를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미국이 실제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한국이 충분한 달러화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며 "외화보유액 자체는 적지 않지만 대규모 투자 집행이 시작되면 추가 축적은 쉽지 않을 수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허 교수는 통화스와프 체결 효과에 대해 "환율을 직접 낮추는 것은 아니지만 외환시장은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며 "시장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원/달러 환율에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첫 대미 투자 프로젝트는 다음달 18일 한·미 전략투자공사 출범 이후 공개될 전망이다. 현재로선 원전 사업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