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제 전환 속 세계 주요 중앙은행 인사들은 중앙은행의 핵심 책무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화폐에 대한 신뢰 유지를 강조한다. 사진은 2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2026 BOK 국제콘퍼런스'에서 패널토론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이예빈 기자
인공지능(AI)과 스테이블코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기존 화폐·결제 질서를 흔들면서 중앙은행의 역할도 재정의되고 있다. 세계 주요 중앙은행 인사들은 디지털 혁신을 수용하되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화폐 신뢰라는 중앙은행의 본질적 책무는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한국은행은 2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2026 뱅크오브코리아(BOK) 국제콘퍼런스'에서 '디지털 경제 시대의 중앙은행 역할'을 주제로 고위급 패널토론을 개최했다.

토론에는 닐 카시카리(Neel Kashkari) 미국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 투오마스 발리마키(Tuomas Valimaki) 핀란드은행 이사, 다니엘 팔로타이(Daniel Palotai) 헝가리 중앙은행 부총재, 타오 장(Tao Zhang) 국제결제은행(BIS) 아시아태평양 대표, 이수형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AI 혁신·디지털화가 금융시스템과 통화 환경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지만, 중앙은행의 핵심 책무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화폐에 대한 신뢰 유지라는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카시카리 총재는 암호자산과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비교적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비트코인이 등장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결제수단이나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당초 기대했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비트코인은 여전히 투기적 자산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다만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암호자산 거래 촉진, 국경 간 결제, AI 기반 자동거래 등 일부 활용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현재 암호자산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도 "은행 규제나 통화 통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중앙은행과 규제당국이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안정 유지하면서도 혁신 촉진 균형 필요"
사진은 행사에 참석한 신현송 한은 총재(화면 맨 왼쪽). /사진=이예빈 기자
발리마키 이사는 디지털화가 진전될수록 오히려 중앙은행 화폐에 대한 신뢰가 더욱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돈의 미래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신뢰의 문제"라며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물가안정을 통해 화폐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금 사용이 감소한다고 해서 중앙은행 화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디지털 경제에서도 공공화폐가 신뢰의 닻의 역할을 해야 하고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목적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정학적 갈등과 사이버 위협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결제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것도 중앙은행의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팔로타이 부총재는 AI와 디지털화가 중앙은행의 내부 운영 방식과 금융감독 체계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AI를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해선 직접 구축하고 활용하는 경험이 필요하다"며 헝가리 중앙은행도 자체 AI 도입과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핀테크 혁신을 지원하기 위한 규제 샌드박스 운영 사례를 소개하며 "금융안정을 유지하면서도 혁신을 촉진하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경 초월하는 디지털 경제, 국제 공조 중요"
사진은 이수형 한은 금통위원. /사진=이예빈 기자
타오 장 BIS 대표는 디지털 경제 시대 중앙은행의 역할을 ▲정책 원칙 제시 ▲혁신을 뒷받침하는 규제 체계 구축 ▲안전하고 효율적인 금융 인프라 강화 ▲민간 혁신 지원 등 네 가지로 정리했다.
그는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화폐의 신뢰와 단일성,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며 "AI와 토큰화, 디지털 플랫폼 등은 국경을 초월해 작동하기 때문에 국제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수형 금통위원은 한국은행이 추진 중인 CBDC 실거래 실험인 '프로젝트 한강'을 소개하며 디지털 경제에 대응하기 위한 한은의 노력을 설명했다.

그는 "프로젝트 한강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도매 CBDC를 기반으로 은행이 예금 토큰을 발행해 실제 결제에 활용하는 구조"라며 "저렴하고 효율적인 결제수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국민의 공공화폐 접근성을 보장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금융이 확대되면 통화정책의 파급경로가 변화할 수 있고 온라인 거래의 확산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며 "중앙은행은 새로운 금융 환경에 맞춰 정책 수단과 모니터링 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