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보험계약대출 한도를 줄이면서 서민들의 급전 창구가 좁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보험사에 가계대출과 건전성 관리를 주문한 데 따른 조치지만 한편에서는 서민·취약계층의 금융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당국의 또 다른 정책 기조와 맞물려 엇박자가 난다는 지적도 나온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보험사들이 보험계약대출 한도를 줄이면서 서민들의 급전 창구가 좁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보험사에 가계대출과 건전성 관리를 주문한 데 따른 조치지만 한편에서는 서민·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당국의 또 다른 정책 기조와 엇박자가 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주요 보험사들은 지난 4월부터 보험계약대출 한도를 낮춰 운영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일부 연금보험과 종신보험 등의 보험계약대출 최대한도를 기존 해약환급금의 95%에서 85%로 10%포인트 낮췄다. 현대해상도 연금·저축보험을 대상으로 보험계약대출 한도를 해약환급금의 95%에서 85%로 조정했다. 한화손해보험,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등도 회사별 상황에 따라 한도 축소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화재는 한 발 더 나아가 무배당 삼성 수퍼 보험, 무배당 건강보험 퍼스트클래스, 무배당 삼성 올라이프 수퍼 보험 등 일부 상품의 보험계약대출 취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최근 한도 도달에 따른 건전성 관리 차원의 조치다.


보험계약대출은 가입자가 보유한 보험의 해약환급금 범위 안에서 돈을 빌리는 상품이다. 별도 담보가 필요하지 않고 신용심사 절차도 상대적으로 간편해 통상 '서민 급전 창구'로 불린다. 은행권 대출 문턱을 넘기 어려운 서민이나 소득 증빙이 쉽지 않은 자영업자들이 생활자금 마련 수단으로 활용해 온 대표적인 불황형 대출이다. 보험계약대출 전체 계좌의 70% 이상이 500만원 미만 소액대출로 형성돼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성격을 보여준다.

수요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보험사의 가계대출 잔액은 134조500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5000억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보험계약대출 잔액은 71조4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6000억원 늘었다. 보험사 전체 가계대출의 절반 이상이 보험계약대출이다. 또 전분기 대비 전체 가계대출 잔액 증가분(5000억원)보다 보험계약대출 잔액 증가분(6000억원)이 더 많다. 보험계약대출을 제외하면 다른 가계대출은 되레 줄었다는 얘기다. 보험을 깨지 않고 자금을 마련하려는 소비자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이 한도 조정을 주문한 배경에는 리스크 관리 필요성이 있다. 보험계약대출이 주식이나 가상자산 투자 등 이른바 '빚투' 자금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진 데다 대출 원리금이 해약환급금을 넘어서면 보험계약이 해지돼 소비자가 보장 공백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대출 잔액이 빠르게 불어날 경우 건전성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다만 현장에서는 정책 방향이 충돌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올해 들어 서민금융 공급 확대와 취약계층 금융접근성 제고를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보험업권에 대해서도 소상공인·취약계층 대상 보험 지원, 보험료 납입유예, 보험계약대출 이자 부담 완화 등 포용금융 역할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동시에 보험사에는 보험계약대출 한도 축소 등 리스크 관리를 주문하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도권 금융 안에서 비교적 손쉽게 이용하던 통로가 좁아지는 셈이다.

특히 보험계약대출은 대출을 받더라도 보험계약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 대출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도가 줄어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하면 일부 소비자는 보험계약 해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당장의 현금은 확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보장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서민금융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정책 목표와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도 부담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계약대출은 신용대출과 달리 가입자가 쌓아 둔 해약환급금을 기반으로 하는 상품이라 서민들의 생활자금 수요가 적지 않다"며 "건전성 관리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일률적인 한도 축소가 소비자 불편이나 보험 해지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