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제약 여걸에서 세계의 제약 여걸로'. 제약업계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로 주목 받아온 김은선 보령제약 회장(54)이 아시아·태평양 제약업계로 명성의 범위를 넓혔다. 최근 아·태 지역 대중약협회(APSMI) 회장으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세계대중약협회(WSMI)의 산하협회로 지난 2010년 11월 대만에서 결성된 APSMI는 대중의약품시장과 산업의 발전을 목표로 설립됐다. APSMI 이사회는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총회에서 김 회장을 2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김 회장은 회장수락 연설에서 "세계의약품 시장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태지역의 역할과 책임이 커지고 있는 만큼 더 많은 국제 교류와 협력을 통해 자기 건강관리 능력 증진과 대중의약품 산업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실 김 회장의 세계 제약업계 리더 등극은 아버지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그의 부친인 보령제약 창업주 김승호 회장만 해도 지난 1991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WSMI의 회장을 역임했었다. 당시 김승호 회장의 WSMI 회장 선임으로 그해 WSMI 세계대회는 서울에서 열렸을 만큼 세계 제약계가 한국의 제약기업을 주목했다.
세계 제약업계를 호령한 아버지의 후광을 적지 않게 입은 김 회장이지만 그가 APSMI 회장에 선임된 것은 보령제약을 정상급 제약회사로 키워낸 그의 경영성과에 근거한 결과물이다.
창업주인 김 회장은 딸만 넷을 뒀는데 첫째 딸 김은선 회장과 넷째 딸 김은정 보령메디앙스 부회장만 아버지를 도와 경영자의 길을 걸었고, 둘째 딸과 셋째 딸은 전업주부로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김은선 모령제약 회장 건물 사진_류승희 기자
김은선 회장은 1986년 보령제약에 입사한 이래 계열사인 킴스컴 대표이사와 보령그룹 회장 비서실장 등을 거쳐 2001년 부회장, 그리고 2009년 회장자리에 올랐다. 여성다운 부드러움과 꼼꼼함으로 경영전반을 관장하면서도 사업추진 행보에 있어서는 거침이 없었다.
보령제약 입사 당시 김 회장은 주로 기획과 마케팅 관련 부서에서 일했다. 이후 용각산, 겔포스, 구심 등이 국민의약품으로 자리 잡는데 마케팅 분야에서 크게 활약했다.
김 회장이 회사를 이끌기 직전인 지난 2008년말 보령제약의 매출은 2000억원을 밑돌았고 영업이익률은 3.5%에 머물렀지만 김 회장은 취임 첫해 매출액을 20%까지 끌어올리며(2678억원) 화려하게 데뷔했다.
지난 10년의 보령제약을 이끌어온 대전략과 비전 역시 대부분이 김 회장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1999년 10월, 보령그룹이 선포한 ‘NEO21’ 비전이 대표적이다. ‘Newly(새롭게), Early(빠르게), Only(으뜸으로)’의 약자로 21세기를 열겠다는 당시의 이 비전은 2000년부터 최근까지 보령그룹의 캐치프레이즈가 되고 있다.
물론 김 회장의 경영행보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 식품의약품안전청 중앙기동단속반 조사에서 보령제약이 판매하는 '발효 블루베리100'이 블루베리 100% 농축액이 아닌 게 드러나 적잖은 곤혹을 치렀다.
하지만 당시 김 회장은 문제의 제품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조돼 보령제약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을 소비자에게 상세히 알리면서 경영위기를 조기에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