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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속여제 이상화와 일본 금메달리스트 고다이라의 평창올림픽 세리머니는 인상적이었다. 경기 후 두 선수는 손을 잡고선 나란히 서로의 국기를 흔들며 관중의 환호에 화답했다.
앞서 이상화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고다이라를 껴안았고 고다이라는 그런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맞수가 나눈 축하와 위로는 화합의 올림픽 정신을 상징한다.
서로 다른 조에서 펼친 두 선수의 개인 기록경기를 한일전으로 여기진 않는다. 몸을 맞부딪치는 축구나 야구 같은 단체전과는 그 양상과 성격이 달라서다. 반면 순전한 개인전으로 취급하기엔 뭔가 찝찝한 구석도 있는 게 사실.
'한일전'이라는 망상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무조건 이기는 것밖에는 다른 수가 없는 한일전은 자국민의 환심을 사려 반감을 이용해온 정치적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한일전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청소년에겐 단순히 '일본과의 경기' 외엔 별다른 의미가 없는 모양이다. 낡은 프레임 속에 갇힌 한일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된 셈이다.
기존 한일전에서 어른들의 습관적인 편견이나 무조건적인 반감을 덜어내면 무엇이 남을까.
◆청소년소설이 제안하는 새 프레임
새로 나온 책 <날마다 한일전>은 그런 의미에서 뜻깊게 읽힌다. 이 책은 우리 청소년들이 낡은 한일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점을 생각해볼 이유와 방법을 제시한다.
교토 도시샤대 윤동주 시인의 시비 앞에서 만난 고2 '장수'와 일본 여고생 '유키'의 풋풋한 로맨스는 번번이 한일관계의 쟁점들 앞에서 좌절한다. 장수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두 나라가 풀어야할 여러 문제들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다 끝내 스스로의 원칙을 세운다.
바로 '한일전은 계속돼야 한다'는 것. 이기기 위한 한일전이 아닌 바람직한 관계를 위한 한일전. 풀어야 할 건 반드시 풀고, 서로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한일전. 이것이 장수가 바라는 새로운 한일전이다.
그들의 연애담 속에는 오해와 싸움을 반복하면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우리 청소년들과 양국의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건강한 한일전을 꿈꾸다
올핸 3·1운동이 일어난지 99주년이 되는 해다. 동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길목에 있다. 우리에게 이 두 사건을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념'이란 오래 잊지 않고 마음 속에 간직한다는 뜻이다. 일본정부는 두 사건 모두 더 이상 '기념'되지 않았으면 하는 속내가 깊을 것이다. 아무도 기념하는 사람이 없어, 게다가 100년이나 지난 먼 일이니 사과할 필요는 더욱 없을 테니까.
1300회를 넘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매번 그날이 마지막 집회가 되길 꿈꾼다. 싸우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싸움을 멈추려고 싸우는 것이다.
일본에게 진정한 사과를 원하는 이유도 제대로 된 관계를 만들고 평화로운 미래를 약속하기 위함이다. 결코 한일전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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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웅 기자
박정웅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