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홀저 개인전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 설치전경.(국제갤러리 제공)© 뉴스1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어두운 공간에 형형색색의 LED 사인이 떠다닌다. 영문과 국문으로 된 문장은 색을 바꿔가며 위아래로, 양 옆으로 움직인다. 문장이 나오는 기계는 회전하기도 한다.

미국 현대미술가 제니 홀저는 이런 LED 작품 4점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3 공간에 설치했다. 오는 2021년 1월3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생생한 공상을 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를 위해서다.


작품에는 수많은 문장이 등장한다. 이는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간결한 경구들로 구성됐다. 모든 경구는 세상에 존재하는 텍스트 어딘가에서 인용된 일부다. 개중에는 인상적인 문장도 있지만,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특히 국문으로 된 문장은 더욱 그렇다. 미국인인 제니 홀저는 영어로 된 경구를 한글로 번역해 작품에 담았다. 현지에서 번역되다 보니 번역투처럼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제니 홀저는 이런 지적이 있음에도 수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관객들이 집중력을 발휘해 문장을 읽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문장과 작품이 움직이는 것 또한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제니 홀저는 이번 작품에 대해 "최근 프로그래밍을 통해 텍스트와 사인 자체가 움직이는 형상을 연출하는 법에 몰두해 왔다"며 그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작가의 의도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작품들이 대신 전해주리라 기대한다"며 "그렇게 두는 것이 더 프로다울 뿐 아니라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제니 홀저 개인전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 설치전경.(국제갤러리 제공)© 뉴스1

전시장에는 LED 작품만 있는 게 아니다. 경구를 새긴 대리석 벤치도 있고, 정치적 이슈를 다룬 회화 작업도 전시된다. 특히 회화 작품들은 정부 비밀 문서에 담긴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K2 공간 벽면을 장식한 검열회화다. 린넨에 유화를 입히면서 비밀 문서였지만 법에 따라 공개된 정부 문서를 회화로 번안하는 방식으로 작업됐다.

특히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수채화 연작이 눈길을 끈다. 이 작품들은 2016년도 미국 대선때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FBI 수사결과를 담은 '뮬러 보고서'를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의 회화 작품은 대부분 금박과 은박을 씌운 작업으로 분류되는데, 그 반짝거리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품격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이처럼 그의 작업에는 다양한 메시지가 숨어있다. 현대미술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 메시지를 찾는 일이 험난하지만, 찾고나면 뿌듯함을 느끼면서 그 메시지가 우리를 바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술은 '미술'(美術)이다. 우리는 작품의 이미지를 보고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면 그만이다. 그런 점에서 제니 홀저의 작품은 그 자체로도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다. 형형색색의, 반짝거리는, 그러면서도 알 듯 말 듯한 문장을 작품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마지막으로 제니 홀저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생생한 공상을 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경구에서 따온 것에 대해 "평소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문구를 제목으로 활용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경구가 전시제목으로 가장 적절했던 것 같다"고 했다.

제니 홀저 개인전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 설치전경.(국제갤러리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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