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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온다예 기자 = 지난 6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실험적인 공간이 나타났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쓰레기 줄이기)를 내세운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이 바로 그곳이다. 망원시장에서 장바구니를 대여하고 비닐봉지 줄이기 프로젝트를 하던 '알짜' 3명이 합심해서 탄생한 알맹상점은 세제나 화장품을 대용량으로 갖추고 포장재 없이 제품을 판다.
재사용 용기를 들고 상점을 찾는 손님들은 원하는 종류의 세제나 화장품을 단 몇 그램이라도 원하는 만큼 담아갈 수 있다. 액체류 생필품 외에도 대나무로 만든 칫솔, 천연 수세미, 스테인리스·실리콘 빨대 등 다양한 친환경 제품도 구매가 가능하다.
상점 한 편에는 플라스틱과 우유팩 등을 모으는 '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 코너도 있다. 재활용 센터를 거치면 플라스틱은 예쁜 치약짜개가 된다. 말린 커피가루는 화분이, 우유팩은 화장지로 재탄생한다.
"망해도 의미는 있다"며 용기있게 가게 문을 연 고금숙(42) 공동대표를 지난 14일 알맹상점에서 만났다.
◇ 재사용 용기 들고 알맹상점 찾는 밀레니얼 세대
"'망해도 의미는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가게를 시작했어요. 전기요금만이라도 벌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찾아와주는 손님이 많아 기쁩니다"
가게를 소개하는 고 대표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딱 1년만 실험 정신으로' 시작한 알맹상점에는 전국 각지에서 입소문을 듣고 온 손님들이 찾아온다.
고 대표는 "경기 광명, 일산, 분당에 사시는 분들이 자주 오시고 멀게는 부산, 광주에서도 놀러오시는 분들이 있다"며 "세제를 구매하기 위해 3㎏짜리 용기를 4개씩 들고 오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뒤 10년간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동하며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생리대 유해물질 이슈화, 화장품 미세플라스틱 사용 금지 등을 이뤘다.
3년여 전부터 망원시장에서 장바구니를 대여하는 플라스틱 프리(free) 캠페인을 진행했고 캠페인을 하다 만난 양래교, 이주은 공동대표와 함께 지금의 알맹상점을 만들었다. 이들이 인연을 맺은 '알짜'(알맹이만 원하는 자) 모임은 현재 3기까지 활동 중이다.
공동대표 3명이 돌아가며 운영을 하는 알맹상점은 일주일에 36시간 문을 연다. 일반적인 가게보다 주간 운영시간이 짧은 것을 감안하면 알맹상점의 실험은 성공한 셈이다. 상점을 찾는 손님 중 약 70%는 20~30대 여성이다. 하루 평균 50여명이 방문하고 월 매출은 최대 2000만원까지 나왔다.
고 대표는 "소비자도 알맹상점과 같은 대안적 소비를 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욕구와도 잘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 "기업에 '된다'는 것 보여주자…망해도 의미있다"
알맹상점의 성공은 단순한 성공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고 대표는 기업은 '된다' '반응이 있다'는 것을 보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다며 "우리가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 '망해도 잘 망하자'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없는 소비를 위해선 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기업이 제조·생산단계에서 포장을 줄이거나 유통업체가 변하지 않으면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처음엔 납품 거래처를 뚫는 것 자체가 난관이었으나 소비자들의 호응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기업들이 먼저 거래를 하자고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고 대표는 "알맹상점은 친환경 제품 소비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들은 친환경 성분도 중요하고 일회용 용기를 안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기업 입장에선 타기팅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층이 주 고객이기 때문에 SNS를 통해 상품에 대한 평가도 빠르게 퍼져 나간다"며 "리필스테이션이 기업 제품의 '홍보'도 가능케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들어 아모레퍼시픽, 이마트 등 대기업도 리필 판매를 시작했다. 고 대표는 "바라던 바"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기업이 좀 더 적극적으로 리필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자사 제품을 활용해 리필 판매를 하는 것도 좋지만 자사제품을 벌크로 영세한 리필스테이션에 공급해 '제로 웨이스트' 유통망을 구축해야 한다"며 "유통단계부터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기업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을 움직이기 위해선 유통 생태계 말단에 있는 제로웨이스트 가게가, 그리고 소비자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소비자의 요구를 모아 기업에 전달하고 변화를 꾀하는 것 자체가 시민운동이 될 수 있다고 고 대표는 말한다.
최근 알맹상점과 십년후연구소 등 20여곳이 참여한 '브리타 어택'이 대표적인 사례다. 어택은 항의, 요구를 뜻한다. 이들은 필터 정수기 기업 브리타 코리아에 전국에서 회수한 필터와 함께 국내 필터 수거 및 재활용 프로그램 시행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의 브리타는 자체적으로 필터를 회수해 재활용하지만, 한국은 재활용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버려지는 필터를 보며 '브리타 어택'을 결심하게 된 고 대표는 "브리타 측으로부터 공문을 받게 되면 1차적으로 브리타 어택은 마무리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고 대표의 플라스틱 프리운동의 다음 타깃은 화장품 용기다. 그는 "내년부터 재활용 어려움 정도를 표기하는 재활용 등급제가 실시되는데 화장품 용기는 등급제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며 "제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제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사례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해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 스스로 '쓰레기 덕후'라고 부르며 13년간 환경운동 선봉장에 선 고 대표에게 알맹상점의 궁극적인 목표를 물었다.
"'아름다운 가게'처럼 리필스테이션이 동네마다 생겼으면 좋겠어요.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에서 천천히, 즐겁게 플라스틱 프리를 실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까는 것이 목표입니다."
고 대표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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