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호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교육의봄 사무실에서 열린 '교육공동체 신뢰 회복 국민운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불편한 얘기부터 꺼내려 한다. 나는 1980년대 초중반에 중고교를 다녔다. 체벌하면 으레 '대걸레 자루'부터 떠오른다. 성적 부진, 흡연, 싸움까지. 학생들은 여러 이유로 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엉덩이를 맞았다. 어떤 선생님은 '쇠줄 시계'부터 풀었다. 뺨을 내려칠 때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고. 그것이 훈육 효과를 발휘했는지는 모른다. 지금 돌이켜 보면 폭력과 다름없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은 공개하자마자 봤다. 나는 폭력 옹호자가 아니다. 처음엔 불편했던 체벌 기억이 겹쳤다. 그것도 잠시였다. 장면마다 '맞아도 싸다'는 통쾌함이 솟구쳤다. 드라마 속 '빌런(악인)'들은 과거와 차원이 달랐다. 학내 죽음과 마약 유통 같은 극악한 범죄 행위의 가해자였고 '공분 유발자' 그 자체였다.

비슷한 시선은 나 말고도 많았다. 삽시간에 '교권 확립' 구호가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잠겨있던 교실의 병폐도 낱낱이 떠올랐다. 지난주 서울 용산의 기자회견장은 그 압축판 같았다. 11개 교원, 학부모, 교육 단체들이 모여 토로를 쏟아냈다. 한 참석자는 "5년간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교사가 125명"이라며 "교권 5법도 만들었지만,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호소했다. 교실 갈등을 법과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학교의 사법화'가 교권 위축을 부추긴다는 구조적 진단에는 나도 공감했다.


정책 당국은 아직 중구난방이다. 충남교육청에선 교육감 직속의 '교권 보호관'을 7월에 출범시킨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면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22일 학부모들을 만난 자리에서 "응징과 대립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누군들 당장 똑 부러지는 묘안을 내놓긴 쉽지 않은 듯하다.

나는 교권보호국 논쟁을 넘어 다른 제안을 하고 싶다. 교실 밖의 '빌런'들로 시야를 확장해보자. 선을 넘는 자들은 수두룩하다. '민원 공무원이나 경찰을 폭행하기, 버스 기사에 흉기 휘두르기, 아파트 경비원 괴롭히기, 응급실 간호사에 폭언하기.' 이제는 낯선 뉴스가 아니다. 모두 타인의 권리와 권한을 우습게 여기고 짓밟는 행위다. 이것이 살인이나 흉악 범죄로 이어질 때도 많다. 최근 대통령까지 공개 질타한 '광주 소방서 사건'도 마찬가지다. 술자리를 강요하는 갑질로 여성 소방공무원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상사와 조직은 드라마 참교육의 빌런과 다를 바 없다. 애들은 어른들을 따라 하고 배운다. 교권이 해체되는 현실도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교육학 개념을 빌리자면 '비(非)인지 능력'의 결핍 때문은 아닐까 질문을 던져본다. 인지 능력은 외우고, 공부하는 힘이다. 반면 비인지 능력은 '공감, 자기조절, 소통'을 말한다. 그래서 '마음의 힘'이라고도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이걸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일터도 그렇다. 빈곤한 시절을 산업화로 극복하는 동안 '경쟁 중심, 개인 중심, 성과 중심'의 생존 방식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마음의 힘을 스스로 깨치면 좋지만 그게 어렵다. 인간의 뇌에 아직도 수렵 시절의 폭력성과 자기중심적 유전자가 남아 있어 '빌런 본능'을 자극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지레 체념할 필요는 없다. 독일 사회학자 노버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성찰은 솔깃한 시사점을 던진다. 예컨대 중세 기사들은 명예∙헌신보다 약탈∙살인을 일삼는 무뢰한이었다. 하지만 근대 궁정사회에 예법과 공동체 규율이 도입되면서 기사들까지 확산했고, 이들은 스스로 절제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익혔다. 폭력적 본능을 누르는 것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내면 통제'의 결과물이라는 취지다. 진화심리학계 거장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도 이에 동조하면서 '타인에 대한 감정 이입과 자기 통제가 폭력성과 가학성을 낮춘다'고 했다.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집단 괴롭힘 같은 문제가 심각했던 일본의 교육 현장도 최근 '비인지 능력'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 웹사이트에는 흥미로운 인터뷰가 올라와 있다. 자국 교육을 홍보하는데 주제가 특이하게도 '교실 청소'다. 인터뷰에서 아베 교코 테이쿄대학 교육학부 교수는 "단순히 청소를 잘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다. 일의 의미를 가르치고,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다하는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고 했다. 청소로 공존의식을 심어준다는 얘기다. 일본을 방문한 이집트 대통령이 청소 교육법을 수입해갔다고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처방이 개인주의와 다양성을 억압하는 '또 다른 폭력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이에 재반론을 하자면 '자유와 무질서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교실에서, 그것도 어릴 때부터 공존감과 자기 통제법을 더 가르치고 익히게 하자. 이것이 사회로 확산할 때 비로소 교실 안 빌런도, 교실 밖 빌런도 자취를 감춘다.

김준술 시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