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인터파크

지난해 1월 유튜브에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동영상이 지금까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강민구 대법원 법원도서관장의 강연을 담은 영상이다.
60대 법조인이 디지털 혁신과 미래를 소개한 강연이 크게 회자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다가올 변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 때문이다.

장면 하나. 정약용은 환갑을 맞아 죽음 너머를 바라보며 스스로의 묘지명을 썼다. 대개 묘지명이란 지인들이 써주기 마련이지만 귀양을 다녀와 몰락한 처지에서 감히 바랄 수 없었다. 한때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천재는 그렇게 가슴 시리게 늙고 병든 자신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한 갑자의 시간을 견뎠다. 이제 지난날을 거둔다. 거두어 정리하고 삶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기꺼이 나아가고자 한다.”

정약용은 아무리 박한 처지에 놓였어도 결코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일 죽을지라도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살고자 했다.

모든 생물은 늦든 빠르든 성장을 멈추는 순간을 맞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노쇠해질 일만 남은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까. <인생의 밀도>는 너무 빨리 자란 우리에게 여전히 두근거리는 삶이 가능한지 함께 고민하자고 권유한다. 이 책은 노 전문가가 평생에 걸쳐 쌓은 사유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정돈하고자 노력한 중간결과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한국 사법정보화의 틀을 마련한 주요 인물 가운데 하나인 강민구 판사는 이 책에서 정체되지 않는 인생을 사는 법에 대해 조언한다. 저자가 60여년의 세월에서 꺼낸 키워드는 바로 ‘밀도’다.


밀도(密度)는 어떤 내용이 충실한 정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모든 나무는 높이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순간부터는 위로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속을 채워가며 끝없이 단단해질 수는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바람을 견디고 변화를 버티면서 한겹 두겹 밀도를 높인 삶은 나이테로 나타난다. 나무의 키는 언젠가 성장을 멈추지만 나이테는 나무가 죽을 때까지 축적된다.

저자는 이러한 나무의 밀도를 인생에 적용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생의 밀도란 간절한 공부와 치열한 성찰로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한 단단함이다. 단단해지는 공부는 뒤돌아 후회하지 않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이며 이는 삶을 대하는 진지함에서 우러나온다.

<인생의 밀도>는 우리가 평생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틀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스물 이후 인간의 성장판은 닫히지만 살아가는 한 사람의 농도는 끝없이 짙어질 수 있다. 마치 정약용처럼 말이다.

강민구 지음 | 청림출판 펴냄 | 1만5000원

☞ 본 기사는 <머니S> 제528호(2018년 2월21~2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