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파병 관련 발언이 연일 번복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동맹국들에 군함 파견을 요청하며, 7개국이 참여하는 '호위 연합' 구상을 내놓았다. 우리에 대해선 주한미군 숫자를 부풀리면서까지 그동안 도와준 댓가를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그러다 기대에 못 미치는 각국 반응에 17일(현지시간) 한국 등 어떤 나라의 도움도 필요 없다며 분노를 쏟아냈다. 트럼프와 가까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살면서 그가 그렇게 화난 걸 본 적이 없다"고 전할 정도였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에 대해선 "매우 어리석은 실수를 하고 있다"며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그런데 하루 뒤인 18일, 분위기가 다시 바뀌었다. 백악관은 호르무즈 연합군 카드를 여전히 추진하고 있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의 파병을 촉구하는 미국 언론의 사설을 SNS에 공유했다. 회유와 실망, 격분, 짜증 등 최근 트럼프는 다양한 감정을 여과없이 노출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엄중한 국면에서 드러나는 트럼프의 '감정 기복'은 전쟁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난감한 처지를 보여준다. 현재로선 전쟁이 속전속결로 끝날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또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제사회에 전가되고 있다. 조 켄트 국가대테러센터 국장이 사표를 내는 등 친트럼프 진영의 균열상까지 드러났다.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여론도 악화되고 있어,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레드라인'을 넘어 에너지 전면전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이란 최대 해상 가스전에 폭격하자 이란은 카타르 등 주변국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며 맞불을 놓았다. 이란은 주변국과 걸프 지역 에너지 인프라를 완전히 파괴하겠다며 보복을 선언했고, 외신들은 미 해병대의 하르그섬 점령 가능성 등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상황을 관망자로만 지켜볼 수 없다는 점이다. 에너지 가격 급등 만으로도 경제에 치명적이지만 더 큰 부담은 동맹 차원에서 다가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안보와 통상을 패키지로 묶는 협상 전략을 보여왔다. 한국이 이란 전쟁과 관련한 트럼프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아직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안보·통상 분야의 보복을 배제할 수 없다. 주한미군 감축 검토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등은 물론 자동차 관세 부과 등 통상 보복도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우리가 트럼프의 한마디 한마디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젠 트럼프의 감정 기복 리스크까지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됐다. 우리나라는 파병 등 예민한 사안에 대해 최대한 신중하게 검토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갈수록 조급해 보이는 트럼프의 행보 앞에서 언제까지 시간을 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략적 모호성만으론 버티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묘책이 보이지도 않는다. 일단 19일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똑같은 파병 압박을 받고 있는 일본 측이 어떤 대안을 내놓는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어떤지 냉정하게 분석하고 우리의 태도를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