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리포트]할리우드 스타들은 되고 한국 스타들은 안되는 이것
[K컬처의 진화 '1인 기획사', 낙인 대신 제도를 입혀라③]
강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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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의 배우가 연기를 마치는 순간, 무대 뒤에서는 경영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스타는 더 이상 단일한 개인이 아니다. 브랜드이자 권리의 주체로 기능하는 하나의 법인, '움직이는 기업'이 된다.
아티스트의 기업화는 이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사실상 표준이 됐다. 스타는 더 이상 개인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계약과 수익, 의사결정의 중심이 개인에서 법인으로 이동하면서 이들은 하나의 사업 주체로 기능한다. 그 중심에는 에이전시와 론 아웃 코퍼레이션(Loan-out Corporation)으로 분리된 이원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통용되는 '론 아웃 코퍼레이션'은 연예인이나 감독, 작가 등 개인이 자신이 지분을 전부 또는 대부분 보유한 1인 기업을 설립한 뒤, 연예 활동과 관련한 용역 계약을 해당 법인 명의로 체결하는 구조를 뜻한다.
연예인은 회사의 대표이자 주주이면서 동시에 직원으로 근로계약을 맺고, 해당 법인이 영화사나 제작사, 광고주 등과 계약을 체결해 활동 대금을 수령한다. 이후 법인은 비용을 처리한 뒤 급여나 배당의 형태로 개인에게 소득을 지급한다.
법률·세무상으로는 개인 서비스 법인(Personal Service Corporation·PSC)의 한 유형으로 이해된다. 상법상 형태는 대체로 유한책임회사(LLC)를 취하지만, 과세 측면에서는 법인으로 취급돼 일반 기업과 유사한 회계·세무 규율을 적용받는다.
개인을 기업으로 만드는 구조…'론아웃 법인'의 작동 방식
론 아웃 코퍼레이션은 몇 가지 실질적 장점을 갖는다. 법인의 책임과 개인의 책임을 분리할 수 있어 계약과 사업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적 위험을 일정 부분 차단할 수 있다. 여기에 소득을 법인 단위에서 관리함으로써 과세 시점을 조정하거나 각종 연금·복리후생 제도를 활용할 여지가 생긴다. 단순한 출연료 수취 창구를 넘어 개인의 활동을 하나의 사업 구조로 조직하는 장치로 쓰이는 셈이다.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4년 상원 법안 SB 422를 통해 영화·영상 산업에서 활용돼 온 론 아웃 코퍼레이션의 법적 지위를 보다 명확히 했다. 법안은 연예인이나 창작자가 자신이 설립한 법인을 통해 용역을 제공하는 구조를 인정하는 대신, 급여 지급과 원천징수, 고용세 납부 등 고용주 책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영화 급여 대행업체가 론 아웃 코퍼레이션에 지급한 금액을 분기별로 주 당국에 보고하도록 해 산업 관행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감독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론 아웃 코퍼레이션은 단순한 절세 수단을 넘어 콘텐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진화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크루즈는 각각 자신의 법인을 앞세워 출연을 넘어선 제작·투자 지배력을 확보했다. 리즈 위더스푼 역시 여성 중심 서사를 발굴·제작하며 개인의 가치관을 산업으로 연결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들에게 법인은 스타라는 브랜드 자산을 자본화하고 콘텐츠 IP의 실질적 소유권을 확보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다만, 이러한 모델이 처음부터 제도와 조화를 이뤘던 것은 아니다. 미국 역시 스타 개인 법인을 둘러싼 소득 귀속 논쟁과 조세 회피 이슈를 거치며 과세 기준을 정비해 왔다. PSC 규율과 '합리적 보수' 원칙을 통해 법인의 실체는 인정하되 개인 소득의 법인 전환을 통한 과세 왜곡은 차단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진화해 왔다는 점에서다.
"막을 것인가, 설계할 것인가"…K컬처의 과제
초창기 론아웃 코퍼레이션은 고율의 개인소득세를 피하려는 탈세 창구로 지적돼 왔다. 상대적으로 낮은 법인세를 적용받고 사적 비용을 법인 경비로 처리하는 식이다. 1939년 '찰스 로턴' 사건에서 배우 찰스 로턴의 론아웃 코퍼레이션이 법인격을 인정받았지만 법적 분쟁은 이어져왔다. 1999년엔 미국 NHL(내셔널하키리그) 선수들의 론아웃 코퍼레이션 관련 분쟁에서 선수들이 승소하기도 했다. 반면 2022년에는 리얼리티 TV쇼에 출연했던 토드·줄리 크리스리 부부가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법인 자금을 유용했다가 적발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미국 국세청(IRS)과 의회는 정교한 세법 개편으로 맞섰다. '소득을 창출한 자가 세금을 부담한다'는 소득 귀속의 원칙 아래 연방세법 규정을 개정했다. 론아웃 코퍼레이션과 스타 개인의 계약이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꼼수로 이뤄졌다고 판단될 때 IRS가 직권으로 법인의 소득을 개인 소득으로 재분배해 과세할 수 있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조세 회피가 목적인 법인의 세제 혜택을 차단하는 세법 규정도 신설됐다. 특히 1982년 조세형평법(TEFRA)을 제정해 개인과 법인의 퇴직연금 불입 한도 격차를 없애며 제도를 악용하려는 유인을 제거하기도 했다.
수십 년의 보완을 거친 미국의 론아웃 코퍼레이션은 현재 엄격한 컴플라이언스 체계 아래 있다. △독점 고용 계약서 작성 △대금 지급 주체의 일치 △법인과 개인 자금의 철저한 분리 등을 지켜야 세무적 인정을 받는다. 1인 기획사 선진국인 미국도 촘촘한 제도를 완성하기까지 숱한 논란과 세법 개정의 시간을 보낸 셈이다. 산업 구조 변화에 맞춰 투명한 과세 기준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평가다.
이같은 진통을 거쳐 자리잡은 미국의 론아웃 코퍼레이션은 할리우드 등 미국발 대중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양한 스타들이 자신만의 법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특색의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규율 체계가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국내 산업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자칫 '남의 나라 이야기'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실제 현장에서는 해외 사례의 단순 도입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 구조와 규제 체계가 판이한 만큼 국내 실정에 최적화된 제도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남경 사단법인 한국매니지먼트연합 사무국장은 "미국의 론 아웃 코퍼레이션 등 해외 사례가 존재하지만, 이를 그대로 국내에 적용하기에는 산업 구조와 정서적 차이가 크다"며 "해외 모델을 비교·분석해 국내 환경에 맞는 '한국형 아티스트 전문 관리 법인 모델'을 도출하고, 이를 표준화·법제화하는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전오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도 제도 도입 방식에 대해 신중론을 폈다. 그는 "현 상태에서 1인 기획사에 과거 미국처럼 별도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은 무리"라면서도 "미국 연방세법상의 PSC 규정을 참고해 법인세법 체계를 정비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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