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5월24일)을 앞두고 김해 지역 사찰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산사마다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과 허왕후, 그리고 허왕후의 오빠로 전해지는 장유화상 설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식 기록상 불교가 한반도에 전해진 시기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 372년이다. 하지만 가야 설화 속에서는 그보다 약 300년 앞선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오빠 장유화상과 함께 가락국에 들어오며 불교 문화가 전래됐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러한 설화는 김해의 사찰 문화와 지역 정체성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김해 불모산 자락의 장유사는 장유화상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는 사찰 가운데 하나다. 대한불교조계종 범어사 말사로, 장유화상이 가락국에 들어온 뒤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찰 뒤편에는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31호인 장유화상 사리탑이 남아 있다. 가락국 제8대 질지왕이 세웠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훼손된 뒤 복원됐다.
장유신도시 뒤편 산중에 자리한 장유사는 현대 도시와 가야 설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신어산 서쪽 자락에 있는 은하사 역시 장유화상 창건설이 전해지는 사찰이다.
은하사 대웅전 수미단에는 쌍어문양이 새겨져 있다. 두 마리 물고기가 마주 보는 형태의 문양으로, 허황옥의 인도 문화권 배경과 관련된 상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해 곳곳에서 발견되는 쌍어문은 가야와 인도 문화 교류를 상징하는 대표적 흔적으로 거론된다.
해은사 창건 설화는 허왕후와 장유화상이 가락국으로 건너오는 과정과 연결된다. 풍랑을 막아준 용왕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세웠다고 전해지며 사찰 이름인 '해은(海恩)'에도 그 의미가 담겨 있다.
이곳에는 일반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대왕전'이 있다. 내부에는 수로왕과 허왕후 영정이 봉안돼 있어 가야 왕실과 연결된 사찰의 특징을 보여준다.
신어산 자락의 영구암은 풍수설과 함께 전해진다. 장유화상이 창건했다는 설화와 함께 풍수 이야기가 전해진다.
낙동강 하구에서 바라보면 신어산이 거북이가 앞으로 나아가는 형상처럼 보여 '영구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수행 명당으로 알려져 '남방 제일선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흥부암은 임호산에 있다. 가락국 사람들이 도읍을 정할 당시 산세가 험하고 기운이 강하자 장유화상이 절을 세워 나쁜 기운을 눌렀다는 설화가 남아 있다. 현재 사찰은 1985년 화재 이후 복원된 모습이다.
생림면 무척산의 모은암에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허왕후가 인도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세웠다는 이야기와, 거등왕이 모후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함께 남아 있다.
성조암은 수로왕의 아들 거등왕이 부왕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세운 사찰로 전해진다. '성조' 역시 가락국 시조를 뜻하는 이름이다.
김해 사찰에 남아 있는 가야 설화는 역사적 진위 여부를 떠나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된다.
특히 수로왕릉과 대성동고분군, 허왕후릉 등 가야 유적과 사찰 문화가 함께 이어진다는 점에서 김해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역사·문화 도시로 꼽힌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김해의 산사에는 단순한 종교 공간 이상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절집 처마 끝 풍경 소리 너머로 2천 년 전 가야의 이야기가 지금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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